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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위한) 안중근 자서전 : 안응칠 역사

(우리 아이를 위한) 안중근 자서전 : 안응칠 역사 시민의 마음속에 있는 촛불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를 위한 "안중근 의사 옥중 자서전" 후대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바른 나라, 자긍심 입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한말의 의사(義士). 아명은 응칠(應七), 교명은 도마, 해주 출신. 한학을 수학하고 승마(乘馬)·궁술(弓術)을 익혀 문무를 겸하였다. 1895년 천주교에 입교,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경영하던 석탄상점을 팔아 1907년 남포(南浦)에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우고 블라디보스토크로 ..
(우리 아이를 위한) 안중근 자서전 : 안응칠 역사

시민의 마음속에 있는 촛불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를 위한 "안중근 의사 옥중 자서전"
후대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바른 나라, 자긍심 입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한말의 의사(義士).
아명은 응칠(應七), 교명은 도마, 해주 출신. 한학을 수학하고 승마(乘馬)·궁술(弓術)을 익혀 문무를 겸하였다.

1895년 천주교에 입교,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경영하던 석탄상점을 팔아 1907년 남포(南浦)에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우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1908년 의병군을 이끌고 경흥(慶興)까지 쳐들어 갔으나 실패, 1909년 우덕순(禹德淳) 등과 이토 히로부미 살해를 결의, 하얼빈 역에서 사살하고 체포되었다가 1910년 뤼순(旅順) 감옥에서 사형당하였다.

글씨에 뛰어나 많은 유필(遺筆)을 남겼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과 자서전(自敍傳) 등을 집필,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정확히 분석하고 자기의 신념을 밝혔다.

그의 사상을 요약하면
(1) 이토는 한국의 국권을 빼앗고, 동양평화를 파괴한 15조목의 죄인이다.
(2) 나의 거사는 한국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일본 재판정에 설 의무가 없다.
(3) 삶은 꿈과 같고 죽음은 영면(永眠)하는 것이다.
(4) 나의 행동은 오직 진정한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5) 청장년(靑壯年)은 의병으로 투쟁하고, 어린이는 잘 교육시켜 후일에 대비하라 등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한말의 의사(義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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