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山精) ; 이효석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본문 내용>
여름내나 가으내나 그스른 얼굴이 좀체 수월하게 벗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해를 지나야 멀쑥한 제 살을 보게 될 것 같다. 바닷바람에 밑지지 않게 산 기운도 어지간히는 독한 모양이다.
"호연지기가 지나친 모양이지."
동무들은 만나면 칭찬보다도 조롱인 듯 피부의 빛깔을 걱정한다. 나는 그것을 굳이 조롱으로는 듣지 않으며 유쾌한 칭찬의 소리로 들으려고 한다.
"두구 보게. 역발산 기개세 않으리."
큰 소리도 피부의 덕인 듯, 나는 그을은 얼굴을 자랑스럽게 쳐들어 보이곤 한다.
학교에 등산 구락부가 생기면서부터 신 교수 박 교수와 세 사람이 하는 수없이 단짝이 되어 버렸다. 학생들을 인솔할 때 외에도 대개는 세 사람이 주동이 되어서 등산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 차례차례로 산을 정복해 왔다. 학교와 가정과 거리와 그 외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세상 - 산을 새로 발견한 셈이었다.
* 작가 이효석
李孝石 (1907-1942) 호는 가산(可山). 소설가.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경성제국대학 문과 졸업, 숭실전문(崇實專門) 교수 등을 역임. 프로문학이 왕성하던 무렵의 재학시대부터 작품을 발표, 유진오와 함께 동반작가로 불린다.
1928년 자유 노동자의 생활을 취재한 <도시와 유령>(1928)을 <조선지광>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으며, <노령 근해(露嶺近海)>(1930), <상륙(上陸)> <북국 사신(北國私信)> 등 경향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1932년경 한때 총독부 도서과(圖書課)에 취직했던 일로 비난을 받아 한동안 작품활동을 중지했다가 1933년 <돈(豚)>을 발표했으며 <돈> 이후에는 작품 경향을 전환하여 자연과 인간의 본능적인 순수성을 추구했고, 소설관으로 서정성을 내세우고 있다.
후기 작품으로는 <성화(聖畵)>(1935) <산>(1936) <분녀(粉女)>(1936) <장미 병들다>(1938) 등이 있고, 1936년에 발표된 <메밀꽃 필 무렵>은 광복 이전 우리 문학의 대표작이다. 장편에 <화분(花粉)>(1942) <벽공 무한(碧空無限)> <창공(蒼空)> 등이 있으나, 단편작가로서 뚜렷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