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 김동인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작품> 미리보기
딱한 일이었다.
칠십줄에 든 늙은 아버지, 그렇지 않아도 인생으로서는 근 력이 줄어 들어갈 연치에, 본시부터 허약하던 몸에다가 또 한 일생을 통하여 빈곤하게 살기 때문에 몸에 저축되었던 영양이 없는 탓인지, 근래 눈에 뜨이게 못되어 가는 아버지 의 신체 상태가 자식된 도리로서는 근심이 여간이 아니던 차인데, 게다가 엎친데 덮친다고 군졸에 뽑히다니.
칠십난 노인이 국방을 맡으면 무엇을 감당하랴. 당신 몸 하나도 건사하기 어려워 하던 이가 국방군으로? 그러나 피 할 수 없는 나라의 분부다.
임지(任地)를 물어본즉 고구려와의 국경이라 한다. 일가친 척이라고는 자기(열다섯살의 소녀) 하나밖에는 아무도 없으 니 모시고 가서 시중들 수도 없다. 임기는 삼년간이지만 경 우에 따라서는 연장도 한다.
칠십난 아버지를 천리 밖 북쪽나라에 고된 병역살이로 떠 나 보내니, 어찌 살아서 다시 뵙기를 기약할 수 있으리오.
어떻게 면할 길이 없나고도 퍽으나 애써 알아보았다.
그러나 대행(代行)─ 사람을 사서 대신 보내는─ 길 하나밖 에는 없는데 삼년이라는 날짜를 사람을 산다 하는 것은 빈 곤한 자기네들에게는 절대로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하나?
* 작가 : 김동인
金東仁 (1900-1951) 호는 금동(琴童). 소설가. 평양 출생. 한국 현대문학의 터전을 마련한 신문학의 개척자.
문예지 <창조>의 동인으로 이광수의 계몽문학에 반기를 들고 순문학운동을 내세웠다. 진정한 서구적 자연주의 경향의 문학을 확립했고, 이 땅에 본격적인 단편소설에 대한 기반을 세웠다.
단편집에 <감자> <목숨> <김동인 단편집>이 있으며, <운현궁의 봄> <대수양(大首陽)> <젊은 그들> <견훤> 등의 역사소설이 있으며, 평론에 <춘원연구> <한국근대소설고>가 있다. 단편소설 <감자>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 등은 우리 현대문학사의 전형적인 작품이며, <붉은 산>은 민족주의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며, 중편 <김연실전>은 자연주의 경향의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밖에 <약한 자의 슬픔> <마음이 옅은 자여> <유서> <명문> <광화사> <발가락이 닮았다> <K박사의 연구> <대동강> <태형>등의 단편 및 중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