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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 최서해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향수(鄕愁); 최서해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작품> 산은 푸른 안개에 윤곽이 아른하고 담 밑에 저녁연기가 솔솔자자 흐를 때였다. 추근한 땅 위에 부드럽게 내리는 이른 봄 궂은비는 고독한 나그네의 수심을 한껏 돋운다. 전등도 켜지 않은 방 미닫이를 반쯤 열어 놓고 컴컴한 황혼 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나의 몸과 마음은 농후한 자줏빛 안개 속으로 점점 스러져 들어가는 듯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다. 기름을 붓는 듯이 미끄럽게 들리는 빗소리, 삼라만상을 소리 없이 싸고 도는 으슥한 빛, 모든 것은 끝없는 솜같이 부드러운 설움을 휩싸서 여지없는 듯하다. 그 설움은 내 옷을 추근히 적시고 온 모공(毛孔)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서 혈관을 뚫고 붉은 피를 푸르게 물들여서 내 온몸을..
향수(鄕愁); 최서해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작품>
산은 푸른 안개에 윤곽이 아른하고 담 밑에 저녁연기가 솔솔자자 흐를 때였다. 추근한 땅 위에 부드럽게 내리는 이른 봄 궂은비는 고독한 나그네의 수심을 한껏 돋운다.

전등도 켜지 않은 방 미닫이를 반쯤 열어 놓고 컴컴한 황혼 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나의 몸과 마음은 농후한 자줏빛 안개 속으로 점점 스러져 들어가는 듯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다. 기름을 붓는 듯이 미끄럽게 들리는 빗소리, 삼라만상을 소리 없이 싸고 도는 으슥한 빛, 모든 것은 끝없는 솜같이 부드러운 설움을 휩싸서 여지없는 듯하다. 그 설움은 내 옷을 추근히 적시고 온 모공(毛孔)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서 혈관을 뚫고 붉은 피를 푸르게 물들여서 내 온몸을 안팎 할것없이 속속이 싸고 도는 듯이 안타깝고 아쉽고 그리워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애수를 가슴에 부어 넣는다.

아아 감개무량한 날이요, 감개무량한 황혼이다. 나는 이 봄을 당할 때마다 칠년 전 옛 봄을 생각한다. 한 번 간 후로 소식이 묘연한 김군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작가 : 최서해(崔曙海)
1901년 1월 21일 ~ 1932년 7월 9일 본명은 최학송(崔鶴松)이며, 서해(曙海)는 아호이다.
최서해는 카프파의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가장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은 〈우후정원의 월광〉을 포함한 세 편의 시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서간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인 이광수의 소개로 1918년 《학지광》에 앞서 언급한 세 편의 시를 발표하게 된다.

이후 그는 첫 작품 발표의 감격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부름을 가다가도 펴서 읽었지만, 읽고 또 읽어도 싫지 않았다'고 회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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