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 김남천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작품>
아홉 시에서 아홉 시 반까지, 현저동 사식 차입집 앞까지, 차 한 대만 꼭 보내게 해 달라고, 며칠 전부터 신신 부탁이지만, 바쁜 틈에 혹시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근심되어서, 최무경(崔武卿)이는 사무실을 나오려고 할 때에 다시 한 번 자동차 영업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마침 말하는 중이었다. 다른 또 하나의 전화 번호를 불러도 통화 중이었다. 수화기를 걸고 의자를 탄 채 바람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고, 캘린더를 무심히 스쳐 보고, 그리고는 다시 수화기를 쥐었으나, 그 때에 전화는 밖으로부터 걸려 와서, 책상 밑에 달린 종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야마도 아파트 사무실이올시다."
하고,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먼저 지껄여 모았으나, 이내,
"네, 저올시다. 제가 최무경이에요. 안녕하신가요? 네,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네? 내일루요?"
* 작가 : 김남천
(金南天, 1911년 3월 16일 ~ 1953년 8월?)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이며 아명(兒名)은 김효식(金孝植)이다.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로 유학하여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31년에 제적되었다.
일본에서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카프의 소장파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임화와 함께 문예 운동의 볼셰비키화를 주창하였고, 노동쟁의에도 직접 참가하였다. 1931년에 제1차 카프 검거 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었다.
출옥 후 감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물〉(1933)을 발표하고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 문제를 놓고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장편 《대하》(1939), 연작인 《경영》(1940)과 《맥》(1941) 등을 발표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직후 미군정 지역에서 좌익 활동을 시작했다.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경에 임화 등과 함께 월북했다. 월북 후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을 역임하였다.
한국 전쟁에도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나, 휴전 협정 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세력의 숙청으로 오랜 동지인 임화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때 김남천도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53년이나 1955년에 사형당했다는 설, 1977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는 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김남천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이름 한 글자를 지우고 언급하다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름을 되찾고 전집이 출간되는 등 재조명되었다. 북한의 문예사에는 김남천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