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 김남천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작품>
꽹꽹 언 작은 고무신이 페달을 디디려고 애쓸 때에 궁둥이는 가죽안장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듯이 자전거의 한편에 매어달린다. 왼쪽으로 바른쪽으로, 구멍난 꺼먼 교복의 궁둥이가 움직이는 대로 낡은 자전거는 언 땅 위를 골목 어구로 기어나간다. 못쓰게 된 뼈만 앙상한 경종(警鍾)은 바퀴가 언 땅에 부딪칠 때마다 저 혼자 지링지링 울고, 핸들을 쥔 푸르덩덩한 터진 손은 매눈깔보다도 긴장해진다. 기름 마른 자전거는 이때에 이른 봄날 돌틈을 기어가는 율모기같이 느리다. 그러나 길이 좀 언덕진 곳은 미처 발디디개를 짚을 겨를도 없이 팽팽하게 바람 넣은 바퀴가 자갯돌과 구멍진 곳을 분간할 나위 없이 지쳐 내려가기도 한다. 심장은 뛰고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때에,
"남의 쟁골 또 타네?"
* 작가 : 김남천
(金南天, 1911년 3월 16일 ~ 1953년 8월?)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이며 아명(兒名)은 김효식(金孝植)이다.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로 유학하여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31년에 제적되었다.
일본에서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카프의 소장파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임화와 함께 문예 운동의 볼셰비키화를 주창하였고, 노동쟁의에도 직접 참가하였다. 1931년에 제1차 카프 검거 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었다.
출옥 후 감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물〉(1933)을 발표하고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 문제를 놓고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장편 《대하》(1939), 연작인 《경영》(1940)과 《맥》(1941) 등을 발표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직후 미군정 지역에서 좌익 활동을 시작했다.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경에 임화 등과 함께 월북했다. 월북 후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을 역임하였다.
한국 전쟁에도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나, 휴전 협정 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세력의 숙청으로 오랜 동지인 임화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때 김남천도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53년이나 1955년에 사형당했다는 설, 1977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는 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김남천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이름 한 글자를 지우고 언급하다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름을 되찾고 전집이 출간되는 등 재조명되었다. 북한의 문예사에는 김남천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