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관(扶桑官)의 봄 ; 정인택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작품>
모두들 빈둥빈둥 놀고 있는 몸이라 아침엔 으레 경쟁을 하다시피 늦잠을 잤고, 그래선 늘 11시가 지나서야 겨우 부산하게 밥상을 대했다.
그 시각이 거의 약속이나 한 듯이 한결 같아서 비록 선후는 있었지 만 10분 이상의 차이가 나는 때는 별로 없었으므로 우리들 세 사람은 매일 아침-낮인지도 모르지만-세면소에서 흑은 식당에서 얼굴을 대할 때마다 서로 계면쩍게 웃었고, 그리고 짧은 사이에 급속하게 친밀해졌던 것이다.
밥만 먹고 나면 텅 비인 부상관(扶桑官)은 우리들 세상이다.
10여 명이나 되는 하숙인들은 우리들이 아직 자릿 속에 있을 때에 모두들 제각기 일자리를 찾아 나갔고, 집 지키는 사람이라곤 방기(芳紀) 18세의 하마에 하나뿐이다.
하마에는 우리들더러 잠꾸러기라고. 된장국 식는 것도 걱정이려니와 설거지가 늦어서 더 탈이라고, 제발 좀 일찍 일어나 아침만이라도 잡수신 후에 또 주무시든지 말든지 하시라고, 매일 아침상 볼 때마다 넋두리 모양으로 되풀이하는 것이나 그뿐, 그 이상은 이쪽에서 먼 저 이야기를 꺼내어도 대답조차 잘 안 하는 말없는 색시이라 낮이면 어느 구석에가 틀어박혀 있는지 그 존재마저 잊을 지경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혈기 방장한 우리들이 기세를 안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내 맞은편 제일 큰 8죠(2죠는 1평 정도) 방을 차지하고 있는 아사오는 이 집에서 대학을 나왔고, 그 대학 나온 지가 지금부터 2년 전이라니 도합 5년간을 한 하숙에 있는 셈이라 거의 주인과 가릴 바 없었으므로 그와 같이 행동을 한다면 사실 부상관에 있는 한 거리끼는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던 것이다.
* 작가 : 정인택
(鄭人澤, 1909년 9월 12일 ~ 1952년 8월 4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의친왕 망명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언론인 정운복의 아들이다. 한성부 출생이며 원적지는 평안북도 의주이다.
일제 강점기에 《매일신보》, 《문장》 기자를 지내면서, 사소설, 심리소설 위주로 약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문단 데뷔작은 1936년 발표한 〈촉루〉이다. 작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지식인 청년이 주인공인 〈촉루〉는 〈미로〉(1939)와 〈여수〉(1941) 연작으로 이어져 정인택의 대표작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문인보국회에 참가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이 무렵 만주 이주를 배경으로 쓴 〈검은 흙과 흰 얼굴〉(1942) 은 전형적인 친일 작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