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殘雪)
: 근대적 사랑과 결혼의 속물적 속성 비판 작품!
(희곡 문학작품 - 마음 토닥토닥 다스리기)
서구적 생활양식과 자본주의에 의해 파생되는 갖가지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사상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극을 여러 편 썼으며, 희극과 비극, 서구식 가극을 실험하는 등 다양한 극작술을 발휘하였다.
그는 언론인으로서보다도 극작가로서 더 유명하며, 몇 편의 연극론과 함께 그가 남긴 희곡작품으로는 <십오분 간> <꿈> <잔설> <냉소> <약수풍경>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서 <독와사>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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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족과 혼밥이 유행하는 시대.
'마음챙김'이라는 심리학 용어는 현재를 자각하는 마음의 상태로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바쁜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잊고 지냈던
'감수성'을 찾아주는 한 권의 책!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희곡 문학 작품을 엄선하여 마음의 편안함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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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에 있어서 신극이라는 말은 일본을 통해 굴절이입(屈折移入)된 말이다.
다시 말해서 도쿄(東京)에 있던 '쓰키지 소극장(築地小劇場)'을 본거지로 하여 종래에 있었던 신파극(新派劇)에 대한 비판과 반발로 일어난 연극이 바로 신극운동이었다.
따라서 신극운동의 정신적인 지주는 서구의 사실주의 문학정신이었으며, 그 표현기술은 이른바 '리얼리즘' 연출이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상연한 대부분의 작품은 창작극보다는 구미 선진국의 작품을 번역·번안하는 데 의존했고, 그것이 신극운동의 첩경인양 착각을 했었다.
한국 재래의 전통극이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원각사(圓覺社) 시대였지만 신극의 출발은 1911년 말기부터였다.
그런데 신극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연극 비평이 뒤따른 것은 아니고 약 십여 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연극 평론은 못되었고 극히 상식적인 연극론(演劇論)이 지상에 발표되었는데 1920년 5월 <동아일보(東亞日報)> 지상에 실린 윤백남(尹白南)의 <연극과 사회>라는 글 정도를 연극 비평의 효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연극에 관한 간단한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분량에 있어서나 질적인 면에서 <연극과 사회>만한 이론적인 글은 없었다. 윤백남의 글에 뒤이어 현철(玄哲)이 일본을 통해 간접으로 수용한 연극에 대한 일반론적인 글과 극평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이는 김우진(金祐鎭)·김정진(金井鎭) 등 몇 사람에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는 우리나라 연극 비평의 초창기로서 전문적인 평론가가 없이 대체로 두서너 명의 극작가와 한두 신문기자가 인상적인 촌평에 그치는 글들을 썼었다. 그 중에는 김우진 같은 뛰어난 필자도 있었지만, 이는 오로지 그 한 사람에 그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를 맞게 되는데, 이때부터야 겨우 연극 비평이란 분야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젊은 문인들에 의해 단평이나마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 극작가 : 김정진 (金井鎭)
김정진(1886-1936)은 한국 극작가·연출가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호는 운정(雲汀)이다. 일본의 도쿄고등상업학교에서 2년간 수업하고 약 3년간 시마무라(島村抱月)의 문하생으로 극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1920년 이후 귀국하여 <동아일보> <시대일보>의 기자와 도쿄 호치신문사(報知新聞社) 조선 특파원과 <경성일보> 특파원을 역임했다. 1933년에는 조선 방송협회 제2과장에 취임하여 재직 중 사망했다.
* [대표 작품]
<십오분 간>
<꿈>
<잔설>
<냉소>